[울산=정태석 기자] 스마트폰의 부동산 화면을 열면 한 아파트 단지를 두고 여러 숫자가 뜬다. 매물에 붙은 호가, 단지의 최근 실거래가, AI가 계산한 추정가격. 셋 다 ‘집값’이라고 불리지만 숫자는 제각각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집의 진짜 가격은 어느 쪽일까.
울산대공원 장미원의 입장료는 훨씬 단순하다. 매표소에 적힌 숫자 하나가 전부다. 그런데 그 명확한 가격표조차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꽃밭 사이를 잇는 길, 걸음을 늦추게 하는 그늘, 잠시 앉아 풍경을 바라보는 자리. 입장료가 사는 것은 입장이지만, 사람들을 다시 오게 만드는 이유는 가격표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숫자가 말하는 것과 사람이 겪는 것 사이의 간격. 장미에서 시작한 여섯 편 이야기의 마지막 질문은 여기에 있다. 5편에서는 AI가 거리사진과 이동·이용의 흔적에서 사람의 경험을 읽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추천과 금융, 개발 판단에 쓰이면 다음 가격이 만들어지는 조건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살폈다.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한다. 가격과 가치는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완성하는가.
사실 첫 질문에는 함정이 있다. 화면 속 셋 가운데 아직 계약되지 않은 이 매물의 실제 거래가격은 없기 때문이다. 호가는 매도인의 제안이고, 실거래가는 이미 체결된 계약의 기록이며, AI 추정가격은 과거 거래와 물건 조건을 비교한 계산값이다. 하나는 제안이고, 하나는 기록이며, 하나는 계산이다. 이 매물의 가격은 다음 매도인과 매수인이 합의하는 순간 비로소 태어난다.
이 기사에서 말하는 ‘생활가치’는 네 번째 가격이 아니다. 감정평가의 공식 개념인 ‘시장가치’를 대신하려는 말도 아니다. 어떤 집과 동네를 고르는 이유, 그곳에서 살며 얻는 편익과 만족, 아직 가격에 다 드러나지 않은 경험을 가리킨다. 이 구분이 있어야 숫자가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함께 볼 수 있다.
그런데 한 줄짜리 집값 안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사실이 나온다. 사람은 집값을 한 번에 치르지만 시장은 오래전부터 품목별로 계산해 왔다. 경제학자 셔윈 로젠이 설명한 헤도닉 가격의 구조다. 면적과 연식, 층수뿐 아니라 교통과 학교, 상권과 공원도 가격에 각자의 흔적을 남긴다. 집값이라는 한 줄 아래에 보이지 않는 명세서가 붙어 있는 셈이다.
그 명세서를 들여다본 국내 연구에서는 뜻밖의 차이가 발견됐다. 한 연구에서는 공원과 가까울수록 주택가격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양의 관계가 나타났지만, 공원이 크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공원 안에 어떤 시설이 있느냐에 따라 가격과의 관계가 달라졌다. 공원은 지도 위에 칠해진 초록색 한 덩어리가 아니었다. 두 연구가 보여준 것은 공원의 크기보다 얼마나 가까운지,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가격과 더 복잡하게 연결된다는 점이었다.
보이지 않는 명세서에는 빈칸도 있다. 시간대별 쾌적함, 고령자에게 필요한 쉼, 아이와 걷는 길의 안전감처럼 늦게 드러나거나 희미하게만 잡히는 항목들이다. 관측된 가격은 생활가치의 전부가 아니라 시장이 지금까지 읽어낸 일부다.
여기까지는 AI가 시장을 읽는 이야기다. 그런데 출근길 내비게이션을 떠올려 보자. 처음에는 막힌 길을 보여주지만 모두가 같은 ‘빠른 길’을 따라 움직이면 어느 길이 막힐지도 달라진다. 안내가 교통의 일부가 되는 순간이다. AI가 만든 추정값과 추천, 위험점수도 비슷하다. 협상의 기준이 되고 매물의 노출을 바꾸며 대출과 구매력에 영향을 주면, 계산은 시장 밖의 관찰에 머물지 않고 다음 가격이 만들어지는 조건에 들어온다. AI가 가격을 혼자 결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에 표지판 하나를 더 세우는 것이다.
사람이 공간을 경험하고 선택하면 거래·이동·이용의 흔적이 남는다. AI와 시장은 그 흔적에서 패턴을 찾고, 그 결과는 가격 설명과 투자, 공간 설계에 쓰인다. 바뀐 공간은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새로운 선택은 다시 데이터로 돌아간다.

순환을 따라가면 데이터의 얼굴도 달라 보인다. 실거래가 한 건은 어느 가족이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고, 이동자료 한 줄은 누군가의 출근길이나 산책이다. 거리사진에 대한 평가 하나에는 ‘이 길이 더 안전해 보인다’는 사람의 판단이 들어 있다. AI는 그 기록을 빠르고 넓게 읽지만 다음 선택까지 대신 내려주지는 못한다.
조심할 것도 있다. 데이터는 자주 움직이는 사람을 선명하게 그리고 조용히 머무는 사람을 흐리게 그린다. 이용량이 적다는 이유로 고령자와 장애인의 접근성, 어린이의 안전, 조용히 쉴 자리가 덜 중요해지는 것은 아니다. 숫자가 작아도 지켜야 할 가치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공원의 가치도 주변 집값으로 모두 환산되지 않는다. 공원은 집주인만 쓰는 곳이 아니다. 세입자와 방문객, 아이와 노인이 함께 쓴다. 거래가격이 보여주는 것은 시장에서 교환되는 편익의 일부일 뿐 누구나 누리는 공공의 가치까지 전부 담지는 못한다.
그래서 숫자와 현장은 경쟁 관계가 아니다. 부동산 전문가는 추정가격에 어떤 자료와 비교대상이 쓰였고 무엇이 빠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집을 고르는 사람은 실거래가와 추정가격을 출발점 삼아 출근길의 보행로, 더운 날의 그늘, 비 온 뒤의 접근성을 제 발로 확인해야 한다. 가격 비교가 ‘얼마인가’를 알려준다면 현장은 ‘왜 이 집인가’를 묻는다.
여섯 편의 장미 이야기는 결국 한 흐름이었다. 사람들의 반복된 선택이 장미를 특별한 꽃으로 만들었다. 길과 그늘과 자리는 방문을 체류로 바꿨고, 관리와 운영은 좋은 경험을 다시 가능하게 했다. 반복된 경험은 생활권의 선호가 됐고 이제 AI가 그 선택의 흔적을 읽는다. 장미에서 시작한 가치의 역사가 데이터와 가격의 미래로 이어진 것이다.
장미는 한 번 피었다고 영원히 사랑받지 않는다. 다음 계절에도 다시 피도록 품종을 고르고 길과 그늘을 돌보며 사람들이 돌아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장소의 가치도 한 번 저장해 두는 자산이 아니라 반복해서 지켜야 할 약속에 가깝다.
처음의 스마트폰 화면으로 돌아가자. 세 숫자는 여전히 떠 있지만 어떤 숫자도 다음 계약을 대신 맺지 못한다. 가격은 사람의 합의로 성립하고, 그 합의에 쓰이는 데이터도 사람들이 걷고 머물고 기억하고 다시 선택한 흔적에서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데이터의 첫 점을 찍은 것도 사람이다. 그 사실을 알고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으면 두 구절은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가격은 데이터가 만들고, 가치는 사람이 완성한다.
시리즈 순서
1편: 장미는 어떻게 온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을까 - 가치의 역사
2편: 사람들은 왜 꽃보다 그늘에 머무는가 - 공간과 체류
3편: 반복 가능한 아름다움은 어떻게 산업이 되는가 - 공학과 플랫폼
4편: 장미원의 벤치는 왜 집값을 바꾸는가 - 부동산 입지
5편: AI가 계산하지 못하는 부동산의 마지막 10% - AI와 현장감
6편: 가격은 데이터가 만들고 가치는 사람이 완성한다 - 경제적 결론
자료 및 출처
6편에서 새롭게 인용한 자료
1. Sherwin Rosen, `Hedonic Prices and Implicit Markets: Product Differentiation in Pure Competition`,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82(1), 1974.
- 주택가격을 여러 특성의 묶음으로 설명하는 헤도닉 가격 이론 참고.
- https://doi.org/10.1086/260169
2. International Valuation Standards Council, `Standards` 및 `Standards Glossary`.
- 감정평가의 공식 개념인 시장가치와 이 기사의 ‘생활가치’를 구분하기 위해 참고.
- https://ivsc.org/standards-glossary/
앞선 편에서 검증한 자료
- 공원 근접성·면적·시설 유형과 주택가격의 관계는 장미시리즈 4편에서 검증한 국내 연구 결과를 요약 재인용했다.
- AI가 거리사진과 이동·이용자료에서 생활 경험의 패턴을 읽는 과정은 장미시리즈 5편에서 검증한 연구 내용을 요약했다.
- 해당 연구의 상세 서지와 링크는 각 편의 자료 및 출처를 참고할 수 있다.














